네스퀵 다운그레이드 불평

편의점에 가면 먹고 싶은 물건이 정말로 몇 가지 없다. 예전엔 그냥 군것질 자체를 가끔가다 먹는 아이스크림 정도를 빼면 하질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뭔가 간단히 요깃거리 혹은 간식거리로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 그득한 물건들 중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특히 음료 쪽은 그 정도가 심하다. 얼굴 깎아 V라인을 만들어주고, 디톡스를 해서 체형을 바꿔주고, 체내의 알콜을 분해해주는 신비로운 검정콩차, 17차, 옥수수 수염차, 헛개수 등을 만들 기술력은 있는데 제대로된 녹차나 홍차 음료 하나 만들어줄 여력은 없는걸까? 뭐, 가끔가다 녹차가 대략 두어종류 있긴 하다. 그런데 그마저도 롯데마트에서 살 수 있는 페트병에 든 600원짜리 중국산 녹차보다 못하니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다. 차 종류 말고 다른 음료류도 사정은 마찬가지. 우리나라엔 1인당 정해진 분량의 설탕을 소비해야 하는 제도라도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된게 100ml 당 설탕이 15g 이하로 들어간 음료는 씨가 말랐다. 발효유 종류들조차 너무 달아서 그것만 마시고는 버틸 수가 없다. 맹물이라도 마셔서 입가심을 해야지.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주 사먹는 음료가 두세종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팩에 든 네스퀵이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전 단종되었는지 편의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초코에몽이란 유사 상품이 그나마 대체재로 쓸만했기에 그걸 먹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편의점에서 팩 네스퀵의 판매하는걸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샀다. 그런데 정작 먹어보니 같은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저질스런 맛이었다. 기존 제품의 풍부한 맛은 완전히 사라지고, 공허한 단 맛만이 남아있었다. 마신 뒤엔 기분 나쁜 시큼함도 느껴졌고.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하고 팩 측면의 성분표를 읽어보았고,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기존 제품은 원유를 80% 나 사용했던데 반해, 새로 나온 제품은 원유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전지분유 10% 만 넣었던 것이다. 가공유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원유의 함량이다. 우유에 포함된 유지방의 고소하고 풍부한 맛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공유에 남는 것은 그저 착향료와 설탕이 뒤섞인 싸구려 맛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가공유들은 원유를 50% 미만만 넣거나, 아예 저지방 환원유 혹은 탈지분유나 전지분유를 사용한다. 특히 초콜릿 맛 가공유들의 경우 워낙 초콜릿의 풍미가 강하기 때문에 맛을 숨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인지 몰라도 유독 원유 사용 비중이 낮은 편이다.(제품명에 '밀크'라고 써붙여놓고도 원유 함량이 25% 에 불과한 허쉬 드링크는 진짜 X 잡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네스퀵은 압도적인 원유 함량을 자랑했었고, 그랬기에 사먹곤 했던 것인데.. 이젠 그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참 씁쓸하다. 팩 음료 제품 하나가 못 먹을 쓰레기가 됐다고 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식품 산업계의 수준 자체가 이번 일로 밑천이 드러난 것 같아 그렇다. 제조사 측에선 이런 식으로 제품을 다운그레이드시키고도 물건이 팔릴거라 생각하고 내놓는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하기사 스테비오사이드나 아스파탐으로 단 맛을 낸 술들이 국민주고, 착향료로 떡칠한 음료들을 빼면 남는 제품이 없고, 카제인나트륨을 탈지분유로 바꿨다고 자랑스레 광고하는 커피믹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저지방 우유를 그냥 우유보다 더 비싼 값에 내놔도 팔리는 시장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실테니 어련하시겠는가.





덧글

  • haley 2012/06/24 23:28 # 답글

    카제인나트륨을 탈지분유로 바꿨다고 자랑하는 마케터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요(...)
  • Blackmailer 2012/06/24 23:57 #

    가끔은 대학의 경영학부에선 대체 어떤 것들을 가르치고 있는건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 seektom 2012/09/26 00:37 # 삭제 답글

    오늘 편의점 갔다가 우연히 봤는데 딸기맛 네스퀵에는 원유 함량이 92%더군요
    놀라서 옆에 있던 초콜릿 맛을 집어 확인해보니 그건 또 전지분유 10%고...
    왜 그런 걸까요... 이해가 안 됩니다.
  • Blackmailer 2012/09/26 12:58 #

    네스퀵 제조업체가 남양에서 동원으로 바뀌었던데, 그게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요. 다만 '왜' 그랬는진 전혀 모르겠네요.
  • 벼락이 2012/12/19 14:12 # 삭제 답글

    지나가다가 깊이 공감하고 가네요. 게인적으로는 파스x르 사의 우유의 유지방 풍미를 너무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유지방 풍미를 그대로 유지하는 우유를 '비린내'난다고 하니 원...ㅜㅜ 저지방우유가 진짜 맛이라나.... ㅜㅜ;;;;;;;;
  • Blackmailer 2012/12/23 15:14 #

    터무니없이 기름진 음식이 유행하는가 하면, 본래 맛까지 버릴 정도로 밍밍한 맛을 찾기도 하죠. 알쏭달쏭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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