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꼬치의 몰락 불평

한동안 우리나라 드라마에 하나의 클리셰처럼 자리잡았던 씬이 하나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아가씨)가 주인공 손에 이끌려 처음 먹어본 길거리 음식에 반하는 장면. 간혹 가다가 이 장면은 상대가 외국에서 온 중요한 손님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지만, 어쨋건 그 쪽 역시 너무 맛있다며 감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길거리 음식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런 일은 기대하기 어려울 테지만. 그런데 그 길거리 음식조차도 90년대 이후론 점점 퇴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 중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는 놈은 닭꼬치.


우리나라에서 본래 팔리던 닭꼬치의 형태를 보면 일본의 야키토리에서 기원한 것이 확실하다. 파 하나, 닭고기 살 하나 씩 꼽는 것은 야키토리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네기마를 그대로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어쨋건 그런 옛날의 닭꼬치는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맛이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최초의 신호는 파의 실종이었다. 어릴 때는 사실 파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별 상관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가 없는 닭꼬치는 고기도 별로 맛이 없었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부터 닭꼬치를 공급하는 전문 업체가 생겨나고, 그 업체에선 질 낮은 닭고기를 쓰면서 관리하기 귀찮은 파 역시 그냥 빼버린게 아닌가 싶긴 한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하여간, 그 때까진 참을 만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아예 고기가 이상한 것으로 바뀌었다. 마치 공장에서 프레스로 찍어낸 듯 네모 반듯한 살덩이들이 꽂힌 것이 닭꼬치랍시고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갈수록 더 가관이었는데, 아예 네모 반듯한 판에서 한 줄 길게 잘라낸 듯한 물건들이 등장했다. 그것들은 난 먹어본 적도 없지만, 굽고 있는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비린내가 진동해서 저게 사람 먹을 물건이 아니란건 알 수 있었다. 그런 꼬치는 직화로 구울 수도 없다. 살이 흐물거려서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고, 그대로 구우면 냄새가 너무 심하니까. 결국엔 알미늄 호일 위에서 끓이듯이-_- 익혀서 줄 수 밖에 없다.


이걸 먹으라고 파는 건가...


그 정도까지 상태가 악화되면, 사람들도 어지간해선 먹을리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이 뭘까? 양념을 세게 하는 것이다. 치즈소스니, 와인소스니 하는 정체불명의 소스들을 닭꼬치에 발라주는 곳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돈받고도 먹기 싫은 불닭꼬치. 호기심에 친구가 먹던 걸 한입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건 먹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물론 닭꼬치의 타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닭꼬치의 수준이 이런 식으로 하향평준화되자 업자들은 맛을 개선하는 대신 길이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본래 닭꼬치의 길이는 대략 15~20cm 정도였는데, 이걸 30cm 이상으로 늘린 제품들이 등장했다. 물론 닭고기의 질은 다시 한번 떨어졌고.

흔히들 주식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 한다. '바닥 친 줄 알았는데 그 아래 지하실이 있더라.' 닭꼬치가 딱 그 꼴이다. 그래도 요즘은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다. 그런 식의 저질경쟁도 한계에 달한 모양인지, 반동으로 그나마 멀쩡한 닭꼬치를 파는 곳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의 업보는 그냥 사라지지 않나보다, 그런 닭꼬치를 파는 곳들조차 일부는 캡사이신 가루를 줄줄 뿌려준 다음 그걸 순화하겠답시고 허연 치즈소스를 뿌려주는 식의 기행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닭꼬치만 이런 것이 아니라, 한국요리들의 대략적인 경향이 이런 식이란 거다. 저질 식재료의 사용, 이를 감추기 위한 조미료 및 매운 양념의 사용, 그 결과 맛이 평준화되니 양을 늘려서 경쟁.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말 분통 터지는 것은 일본의 그냥 평범해보이는 가게에서 구워주는 110엔 짜리, 그러니까 엔고인 요즘도 대충 1600원 정도 하는 야키토리조차 우리나라 어지간한 이자카야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110엔 짜리 닭꼬치엔 고기는 보통 서너개 정도 밖에 끼워져있지 않겠지만, 너무 길어서 중간중간 꼬치를 펜치로 잘라내면서 먹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길다란 닭꼬치 10개보다 난 그거 하나가 더 낫다.


여담 -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만 깠는데,  을지로의 '도리방'이나 피맛골의 '참새집' 같은 오래됐다는 닭꼬치집들의 수준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거의 모든 꼬치에 발라주는 소스가 달다고 할 수준을 뛰어넘어서 아예 설탕이 버석거리며 씹히기까지 하는 '도리방'은 왜 그렇게 사람들이 우글거리는지 신기할 정도.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 나름 유명한 '필동분식'의 경우, 그건 이미 닭꼬치가 아니라 그냥 연탄불 닭고기구이다. 맛은 앞의 두 곳보단 훨씬 낫다.

여담 2 - 술집에서 닭꼬치를 시키면, 나오자마자 고기를 다 꼬치에서 빼서 그릇에 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러는 걸까? 먹는 방법도 요리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고, 닭꼬치는 역시 막대를 손에 잡고 하나씩 빼먹는게 먹는 재미 아닌가? 


덧글

  • 카시니츠 2012/06/30 12:15 # 답글

    진짜 슬픕니다 ㅠㅠ 저도 제대로된 닭꼬치를 먹고싶어요....
  • Blackmailer 2012/06/30 12:58 #

    동네에서 잘 찾아보세요. 직접 닭고기 사다가 꼬치에 끼우는 집이 간혹 남아있습니다. 그런 곳이 소금구이를 팔기라도 한다면 빙고죠.
  • 카시니츠 2012/06/30 21:10 #

    저희집 근처에는 꼬치를 파는 집이 한 군데도 없어요 ㅠㅠ흑..
  • 지나가는이 2012/06/30 17:42 # 삭제 답글

    정말 좋은 글입니다!
  • 지나가는이 2012/06/30 18:07 # 삭제 답글

    단 숨에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죄다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날카로운 글 부탁드립니다
  • Blackmailer 2012/07/03 17:01 #

    에고.. 부끄럽네요.
  • soonuu 2012/06/30 19:10 # 답글

    정말 요즘 닭꼬치의 맛은 양념 맛으로 먹는 것 같습니다!!
    분식집도 전부 체인화 되어버리구요. 예전의 맛과 그 분위기가 점점 찾기 어려워지네요.

  • Blackmailer 2012/07/03 17:02 #

    예전이라고 꼭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악화된 것만 눈에 쉽게 뜨이는건 어쩔 수 없네요.
  • 번사이드 2012/07/01 02:25 # 답글

    맛있는 닭꼬치란건 접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정독도서관 가는 길에도 닭꼬치 파는데가 생겼는데, 수입냉동닭 쓰는지 겉에 바른 양념맛 빠지니 간도 덜 되고 역해서 영 별로더군요~
  • Blackmailer 2012/07/03 17:04 #

    그 샛별당인가 하는 곳 말씀하시나보네요. 그 정도 닭꼬치라도 줄서서 먹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 지나가는이 2012/07/01 17:14 # 삭제 답글

    예전에 화곡동에 살때 닭꼬치집하나가 골목에 생겼는데 정말 제대로 된 닭꼬치를 하는집이었죠..소금구이 닭꼬치가 메인이었으니 그런데 사장님이 너무 힘들어 하시더군요 .. 사람이 몰릴때는 정말 주문하고 15 -20분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안에서 맥주안주 시킬때는 괜찮지만 포장하는경우나 지나가면서 한두개 먹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이라서 결국 장사는 잘되긴 했는데 너무 힘들었는지 이사가시더군요
  • Blackmailer 2012/07/03 17:06 #

    그래서 어지간한 꼬치구이집들은 미리 초벌구이를 해놓고 주문받으면 데워서 주죠. 주인 입장에선 일하기도 편해지고, 회전율도 올라가니 일석이조입니다. 물론 맛은 즉시 구워주는 것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 나토얀 2012/07/05 21:37 # 삭제 답글

    닭꼬치에 대해 평소 저도생각하고 있던점을 콱 집어 얘기하셨네요.
  • Blackmailer 2012/07/07 13:41 #

    불만있는 사람은 많더군요. 말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요.
  • 닭꼬치장사꾼 2012/07/08 17:05 # 삭제 답글

    닭꼬치 파는 사람입니다.하소연겸 닭꼬치 실정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닭꼬치라는게 마진이 정말 안남는 장사에요.거기에 연기며 여름에는 덥고 해서 노점에선 노력대비 돈을 못버는 가장 기피시되는 먹거리중 하나 입니다.더 문제는 뭐냐면 싸구려 입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입니다. 닭고기맛인지도 모르는 그런 고기를 닭꼬치맛으로 알고 있으니.... 제가 파는 닭꼬치는 생고기를 직화로 굽는데 고기를 좀 먹어본 사람은 불맛이 다르다 고기가 정말 좋다고 하시지만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닭꼬치 맛이 안난답니다. 강한 소스로 쩔어져 있어서 닭고기맛도 안나고 강한 단맛(사카린)이 나는걸 선호 합니다.반면 생고기에 좋은 고기로 하는 닭꼬치는 고기 자체가 두껍기 때문에 익히는 것도 오래 걸리고 기름이 흘려나와서 연기와 불이 장난 아닙니다.그리고 고기에 간이 잘 안배죠. 그래서 균일하게 굽기가 힘들며 굽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또한 고기가 식으면 기름기가 빠진상태라서 딱딱해져서 소스에 쩔어 있는 중국공장산 닭꼬치 보다 맛없게 느껴지죠. 오리지날 직화 닭꼬치를 먹은 사람이 하는말이 닭꼬치맛이 안난답니다. 그리고 장사 잘된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 굽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10분정도 걸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초벌구이로 해놓죠. 또한 사람이라는게 누가 사먹으면 한번에 몰립니다. 그래서 굽는데 기다리는시간이 있어서많아 보이는 겁니다. 일단 마진이 적다보니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마진이 없습니다. 하루 100개 판다고치면 소스값 빼고 가스비빼고하면 일은 힘들게하고도 남는건 없습니다. 하루 100개 팔면 정말 많이 파는축에 듭니다. 제가 5~6시간동안 장사하면서 쉴세 없이 고기 구워도 많이 팔리는날에도 100개 팔기 힘들거든요. 그렇게 해서 버는게 고작 순수 마진 5~6만원정도 입니다. 옆 노점 아주머니는 철판 볶음 같은거 하는데 저보다 연기도 안나고 단순 포장만 하고 판매를 하는데 아직은 초기라 별로 못판다고하는데 하루10~20개 판다고 하십니다 보통 그분도 5~6시간 하시는데... 남편보다 훨씬 많이 벌어서 남편 회사 때려치고 같이 할 생각 이랍니다. 닭꼬치는 연기가 많이나서 사방을 다 개방하고 고기 굽고 덥고 연기에 쩔어서 손까지 누렇게 변색 되더군요. 닭꼬치가 장사가 아예 안돼는건 아니죠.남들 보기에는 장사 잘된다 그러지만 알고 보면 정말 돈이 안됩니다.주말도 쉬지 않고 장사해서 한달 150 정도 번다고하면 여자들이야 회사 다니는것 보단 낫겠다 싶겠죠. 근데 여름 같은경우는 장사도 덜되고 고기가 쉽게 변질 되어서 손해도 많이 보거든요. 많이 파는 많큼 많은 고기를 보관해야하고 변질 우려도 쉽고...날씨가 안좋으면 또 그날 장사는 공치고 등등 장사 잘되는데도 닭꼬치 파는 곳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유가 있는 거죠.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중국산 싸구려닭꼬치가 어쩜 박리다메식으로 더 쉽고 많이 팔수 있겠죠. 장사는 딴 것들 보다 잘되는 편입니다.연기가 많이 나다 보니 냄새에 이끌려서 오는 분들도 많고 그런데 힘들게하는데 결국 돈은 안됩니다.저야 노점이라 그나마 세금이라도 안내서 그나마 낫지 일반 상가에서는 아마 적자일 듯 싶네요. 닭고기도 고기인지라 아무리 싸도 고기값입니다.거기에 꼬치로 가공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그런데 또 판매 가격은 못올리는 현실... 저도 처음엔 멋모르고 꼬치 그릴부터 사놓고 했는데 다른 노점 아주머니가 제일 안할려고하는 건데 왜 그걸 할려고 하냐고 그러더군요.그래도 장비를 다 맞춰 놓은거라 아깝고 해서 계속 했는데 역시나 힘들군요... 그래서 닭꼬치를 접을지 중국산으로 할지 고민중 입니다.. 다들 닭꼬치 장사 왜 하냐고 하시네요. 장비 아깝다고 계속하면 할수록 적자라고....아무튼 실제로 장사하는사람으로서 푸념 섞인 예기 였습니다.
  • Blackmailer 2012/07/09 23:14 #

    결국 궁극적인 책임이나 손해나 먹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제대로된 음식을 제값주고 먹을 줄 아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상황이 좀 나아질텐데,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조차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라..
  • 히메 2012/07/21 02:44 # 답글

    날카로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여담2에 대해 변명해볼게요 (너무 찔려서요ㅎㅎ;;) 보통 야키토리든 쿠시야키든 모리아와세를 시키는데, 꼬치 종류가 많으니까 다들 한 덩이씩 먹어보고 싶잖아요...ㅎㅎ 그래서 나눠먹자고 (그리고 음식 나누는 여자는 상냥해보이니까ㅎㅎㅎ) 열심히 꼬치 빼요.... ㅠㅠ
  • Blackmailer 2012/08/10 12:43 #

    아. 그렇군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꼬치구이집 간지 꽤 되서 그런지 생각이 미치질 못 했습니다.
  • santalinus 2012/09/04 19:50 # 답글

    이대앞에서 파는 닭꼬치 드셔보셨나요? 근 10년간 그 닭꼬치를 먹었는데 이곳만 맛이 좀 다릅니다. 양념에 월계수 잎을 넣어서 비린내가 안나는데다 무려 떡도 끼워서 줍니다. 고기양을 유지하는대신 가격만 약간 올랐습니다만 주인아저씨도 한결같아서 그 앞 터를 이대에서 확장한다고 하면서 장사터를 옮겨달라 했을때 학생들이 결사반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 Blackmailer 2012/09/11 10:25 #

    이대쪽은 잘 가질 않아서 모르겠네요. 아마도 그 대형쇼핑몰 앞쪽에 있는 곳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 santalinus 2012/09/11 12:02 #

    아뇨아뇨~~ 대형쇼핑몰쪽은 정말 최악이고;;; 이대입구 바로 앞에 있는 외로이 하나만 있는 포장마차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단 초벌로 삶으면서 양념장에 다시 삶는 형태라서 다른 데보다는 비교적 위생적이에요. 영혼의 닭꼬치...
  • Blackmailer 2012/09/11 17:25 #

    그 쪽에 닭꼬치집이 있었군요. 노점이 서 있기 어려운 자리일 것 같은데 의외네요. 나중에 지나갈 일이 있으면 먹어보겠습니다.
  • 23r 2016/02/28 14:44 # 삭제 답글

    10년도 전에 대구 살때 300-500원하는 길에서 파는 닭 염통꼬치? 같은걸 자주 먹었는데 요즘은 그런걸 볼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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