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불평

우리나라 음식들을 보면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밥과 함께 먹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홀로 한끼 식사로 충분한 면류를 먹고도 그 국물에 밥 말아먹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는게 한국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어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자체의 맛에는 큰 미련이 없어보인다. 어지간한 식당들에서 나오는 밥은 죄다 밥알에 탄력도 점성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각한 경우엔 아예 군내가 나는 때까지 있다. 맛이야 어떻겠나. 아무리 씹어도 별 맛이 안 난다. 그냥 이런저런 반찬의 짠맛을 순화하기 위한 탄수화물 덩어리일 뿐.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신기한 것이.. 밥 맛있게 지어준다는 압력밥솥 광고는 저녁마다 TV 에서 흘러나오고, 밥맛 좋다는 브랜드 쌀들은 마트마다 가득 쌓여있다. 이런 식의 부조화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밖에서 먹는 밥은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맛있게 지어먹자는 것인가?

어쨋건, 우리나라의 식당에서 먹는 밥의 맛이 엉망인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벼농사에서의 비료 사용이다. 우리나라에서 벼농사에 쓰는 비료의 양은 일본의 두배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이렇게 농사를 지으면 물론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늘어나지만, 쌀의 맛은 떨어진다. 비료를 많이 주면 낱알에 단백질의 비율이 늘어나 밥을 지었을 때 딱딱해지고 찰기가 덜해져서라라나. 요즘 밥맛에 신경쓴다는 식당을 보면 우리나라 쌀이 아니라 일본에서 사온 쌀 혹은 우리나라에서 농사지은 일본 품종의 쌀을 사다가 밥을 짓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고, 실제로 맛도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맛이 차이나는 이유는 품종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고시히카리와 같은 종의 경우 비료를 많이 주면 벼가 높이 자라서 쓰러지기 때문에 비료를 적게 줄 수 밖에 없고, 그 탓에 단백질도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량한 품종들의 경우 고시히카리 등에 비하면 벼의 키가 훨씬 작고, 덕분에 풍수해가 닥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선 우수하긴 하다. 하지만 말한 바와 같이 그냥 닥치고 비료치는 행위도 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쌀의 맛이 떨어지는 현상을 야기했다.

그리고 둘째는 도정과 유통이다. 예전엔 도정 과정에서 쌀알이 바스러지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는 경우가 잦았다. 유통 역시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건조한 곳에 둬서 쌀알이 다 깨지거나 변색된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부분은 좀 나아진 것 같긴 하다. 찾아보면 냉장 유통, 보관한다는 쌀들도 있고. 이 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니 그 정도까지만 말하고 패스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당의 행태다. 위에서 지적한 이런저런 문제는 집에서 밥을 지어먹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식당에서 먹는 밥이 유독 엉망인 이유는 따로 몇가지가 더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은 거의 구제불가능한 수준이다.

일단 식당에서 밥을 짓는 쌀부터 문제다. 아무리 좋은 쌀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더라도, 많은 경우 식당들에선 그냥 저렴한 쌀을 쓰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재고로 쌓인 쌀은 5년이 지나면 더이상 보관하지 않고 주정이나 가공식품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그 말은 바꿔 말하면 5년 묵은 쌀까진 우리가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가끔은 '나라미'(정부미의 상표다;;) 포대를 식당 안에 버젓이 두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식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도 힘든 정부미를 단지 가격 때문에 일부러라도 구해서 밥을 지을 정도라면 다른 음식들의 상태도 뻔할 테니까.

하지만 쌀이야 그렇다쳐도 지은 밥을(밥짓는 법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좀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어떻게 손님상에 내놓는지도 문제인데, 이 부분은 과연 어떨까. 일단 식당에서 밥이 어디에 담겨나오는지 보자. 대부분이 스테인리스 공기에 담겨나온다. 이 밥그릇, 과연 밥을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해 고안된 물건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이 그릇은 금속제이면서도 우리네 전통 놋그릇과는 달리 터무니없이 얇아서 식사하기에는 불편하고(식탁에 내려놓은 뜨거운 공깃밥을 제대로 잡질 못해서 당황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숱하게 있을 것이다.) 보온기능은 최악이다. 식당에서 공기에 담긴 밥 먹다보면 오분도 채 지나기 전에 싸늘하게 식지 않던가. 결국 이 스테인리스 공기는 철저하게 식당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무슨 편의냐고? 설거지와 공깃밥의 보관을 위한 편의.
그리고 이와 연관지어서 마저 이야기하면, 밥을 어떻게 보관하는지도 문제다.(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그냥 밥을 자주 짓는 것이다. 냉동건조시키지 않는 이상 전분의 노화는 막을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식당마다 거의 필수품처럼 있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온장고이고, 보통 식당들은 아침이나 오후에 밥을 한번씩 잔뜩 지었다가 공기에다 다 옮겨담아서 온장고에 넣어 보관해두고, 이걸 손님들에게 하나씩 내어준다. 심한 경우엔 전날 남은 밥을 그대로 주기도 하는데, 실제로 온장고 업체들은 밥을 10시간 이상 끄떡없이 보관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물론 그게 밥의 맛까지 유지시켜준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여간 이 온장고가 왜 문제냐고? 온장고에 밥을 담아두기 위해선 앞서 말했다시피 스텐인레스 그릇에 옮겨담아둬야 하는데, 아무리 공기의 뚜껑을 덮어둔다고 해도 그 뚜껑이 밥의 향이나 습기를 그대로 가둬두진 못 한다. 게다가 온장고는 내부를 건조하게 유지시키고, 외부와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온장고에 넣어둔 밥은 아무리 맛있게 지었더라도 빠른 속도로 푸석푸석하고 아무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 밥으로 변신할 수 밖에. 애초에 밥의 보관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의 개선은 가능한가? 글쎄.. 잘 모르겠다. 한식당을 연다고 하면 당연한 듯이 스테인리스 공기와 온장고를 구비하는 것이 현실인데, 아무리 좋은 쌀 쓰고 밥 잘 지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개인적으로는 아는 식당 없는 동네에서 그래도 상태 나은 밥이 먹고 싶으면 그냥 돈까스집이나 중국집엘 간다.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밥공기 없는 곳 혹은.. 황당한 이야기지만, 꼭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식당엘 가야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 그런 곳들은 최소한 밥을 전기밥솥에라도 담아두니까 말이다.



덧글

  • marmalade 2012/08/04 13:07 # 답글

    예전에 이천쪽에서 일을 했었는데
    이천쌀이 광고도 많이 하고 가는길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쌀밥어쩌구하는 정식을 팔길래
    오오 하며 밥먹으러 갔더니 공기밥이 나와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어요.
    심지어는 돌솥밥메뉴를 붙여놓고선 주문하니 안된다며 공기밥주고- 뭐 그럴수도 있죠.
    그런데 쌀의 고장이라더니 밥이 왜 맛없나요. 이게뭔가 싶더라구요.
  • Blackmailer 2012/08/05 12:07 #

    지방 특산물의 특성을 살릴 생각을 하는 대신, 단순히 브랜드 팔아먹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 푸른별출장자 2012/08/04 13:19 # 답글

    도정과정에서 오는 원산지 표기도 문제가 있지요.
    어디서 생산했는지 모를 벼도 이천에서 도정하면 이천 쌀이 되는 아햏햏한 사태라니...

    또 다른 문제는 손님들에게 있습니다.

    주문받고 돌아가는 종업원 뒤통수에 대고 바로 음식 늦게 나온다고 궁시렁대는 꼬락서니라니...

    정말로 우물가서 숭늉찾는 손님들 많아요.

    라면도 끓이는데 달걀 넣으면 5분은 걸리고 스파게티는 기본 12분이라는...
  • Blackmailer 2012/08/05 12:10 #

    말씀하신대로 손님들도 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 걸려 나와야할 음식이 빨리 나온다면, 궁극적으로 손해는 사먹는 사람이 보게 되어 있는 것인데요..
  • 번사이드 2012/08/05 01:45 # 답글

    그러고보니 최근 적당히 즐긴 밥도 스테인리스공기밥이네요. 온장고에 넣어두는 게 좋을리가 없죠.. 전기밥솥 사용하는 식당도 정말 드뭅니다.. 온장고는 정말 슬프고 거지같은 시스템입니다 ㅠ.ㅠ
  • Blackmailer 2012/08/05 12:13 #

    밥 한 주걱 퍼담는게 뭐 그리 오래 걸리고 귀찮다고 온장고를 고집하는 것일까요.
  • 프랑켄 2012/08/05 15:34 # 답글

    정말 섬세하고 꼼꼼하시네요 혹시 하시는 일이 음식 평론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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