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동네 밥집 (연남동 '산왕식당') 식당

이제 주말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연남동. 가끔 싼 맛에 고량주 한 병 땡기러 가고 싶을 때 향하곤 하던 하하 같은 곳에도 연인들이 길게 줄을 늘게 늘어서 있다. 거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돼지내장무침에 독주 마시는 그런 광경은 잘 상상이 안 되는데, 대체 어떤 메뉴를 먹는 걸까. 다른 곳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TV 프로그램에 나오기라도 했는지. 결국 타의로 가본 일 없던 뒷골목을 서성이다 발견한 곳이 산왕반점이다.

일단 식당의 외양에 끌렸단 점을 고백해야겠다. 좋다, 나쁘다 를 떠나서, 이 집은 정말 홍콩이나 대만 어딘가에 있을 법한 식당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다. 홀 쪽으로 완벽히 개방되어 있는 주방, 장식이라곤 없는 하얀 벽.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다. 당연하지만, 요리사도 화교다. 특히 홀에서 일하는 여성(아마도 요리사의 아내일 듯)은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눈치로 보건대 고객들도 주로 화교들. 메뉴는 인근 화상 중국집들의 그것과 거의 같다. 점심에 갔더니 넥타이 맨 화교 청년이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설명해가며 구체적으로 식사를 주문하고 있었다. 일종의 가지볶음밥 같은 메뉴였다. 즉, 벽에 붙은 메뉴에 없는 요리라 해도 주문하면 해준다는 이야기. 정리하면, 딱 동네사람들을 위한 밥집 분위기다.

솔직히 음식 솜씨가 뛰어난 곳이라곤 말 못하겠다. 특히 튀김류는 경험이 적은지 멘보샤(새우빵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를 시켰더니 기름이 줄줄 흐르기에 기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집은 중국집의 가장 기본적인 장점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문하는 즉시 조리하고, 재료를 풍성히 쓴다는 것. 나에겐 나름의 개똥철학이 있다. 저렴한 한끼 식사로는 중국집만 한 곳이 없다고. 한식이라면 맛대가리 없는 반찬 등에 의미 없이 들어갈 노력과 재료가 중국집의 식사 메뉴에선 한 그릇에 온전히 담기지 않느냔 말이다. 문제는 요즘 중국집들이 그걸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만.

이 집에서 먹은 메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잡채밥이다. 주문하는 즉시 냉장고에서 꺼낸 돼지고기를 길게 썰고, 이런저런 채소들도 채썬다. 굵은 당면 약간과 함께 볶은 뒤 밥에 얹는다. 거기에 녹말 약간 풀어 걸쭉하게 만든 계란국을(만약 누군가 짬뽕을 주문했다면 그 국물을) 조금 내온다. 간단한 한 끼 식사로 이만한 메뉴도 많지 않다. 그런데 향미유와 조미료를 폭탄처럼 들이붓고도 그 아래 숨겨진 민낯을 가리지 못하는 식당들이 많다. 짜장도 마찬가지다. 이 식당은 면을 뽑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으로 식당 한켠에 비닐포장되어 있는 '중화면'을 꺼내 쓰기에 솔직히 뜨악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주문한 즉시 고기를 썰고 양파를 다져 짜장을 볶았다. 그리고 설탕을 과하게 넣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순하고 먹을만 한 짜장이 된다.

꽤 맛집인 것처럼 소개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식당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조리가 들쭉날쭉하고, 특히 요리류는 더 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남동에서 식사할 일이 생긴다면 앞으로도 꽤 자주 이 집을 염두에 두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설픈 컨셉을 내세운 한식집보다는, 이런 곳이 나에겐 더 '집밥'처럼 느껴지니까.

덧글

  • 2014/09/07 22: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07 22: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9/08 00: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혹시 2014/09/18 15:26 # 삭제 답글

    그래도 제가 그제 갔을때 새우빵은 기름이 흐르지는 않더라고요.
    잡채밥이 가장 잘 나가는 메뉴라던데, 정말 식당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잡채밥을 시키더군요.;;

    전 개인적으로 좀 더 익힌 잡채를 좋아하는데 다음에 가면 한번 부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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