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사건, 죽고 다친 사람들만의 잘못인가? 잡담


일단 먼저 밝히자면, 나는 인도화되어 있는 지하철 환풍구 위로도 걸어다니지 않는다. 어렸을 때 실수로 그 틈에 동전을 떨어뜨렸다가 그 아래가 얼마나 깊은지 생생하게 인지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체 거길 왜 올라가?'였다. 아는 사람이 그런 곳 위로 올라가려 든다면 쌍욕을 해서라도 끌어내릴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고가 전적으로 사상자들의 과실 때문인가? 포털 댓글이나 여기 이글루에서 많은 사람들이 글 싸지르는 것처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사고 현장은 가끔 지나갔던 곳이기도 한데, 거기에 깊이 20m짜리 수직갱이 있을 거라곤 정말로 생각도 못 했다. 사고가 난 환풍구는 화단과 이어져 있는 형태이고, 높이도 허리춤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아서 위험하다는 인상을 거의 주지 않는다. 게다가 평소 서울 도심을 자주 걸어다녔던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환풍구 위로 걸어다녔던 경험까지 있을 터. 누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여기 올라가면 위험해'라고 생각할까? 안 그럴 것이다. 확신한다. 사회자의 경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경고도 '잘못하면 환풍구(20m)로 떨어져 죽어요'가 아니라 그냥 '높은 데(1.2m) 올라가면 위험해요' 내지는 '화단에 올라가지 마세요' 정도였겠지.

외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인도화된 곳이 아니라 해도 요즘 SNS에 떠도는 것처럼 완벽한 별개 건축물로 짓거나 그러지 않은 경우가 꽤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보통 미국은 레일이나 관목으로 주변을 두른 곳이 많았고, 일본의 경우 철망으로 막힌 갱 부분이 凹자 형태로 외벽보다 낮게 움푹 들어가 있어서 섵불리 발을 디딜 수 있게 없게 되어 있던 게 기억난다. 이런 정도의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저기 올라가면 안 된다', '저 위에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그런데 판교 사고 현장의 경우 그런 안배가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거길 설계한 건축가가 무슨 생각으로 환풍구를 그렇게 지었는지 한번 물어나보고 싶다. 멋지게 지은 공원 한켠에 흉물이 들어서는 게 그렇게 싫었냐고 말이지.

안전이란 게 그런 거다.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 골목의 교차로에 반사경을 설치하고, 통행량이 많은 도로변에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이유가 다 뭐겠는가. 골목에서 차 몰 때는 잘 살펴보며 서행해야 하고, 무단횡단은 하면 안 된다. 질서의식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부분을 아무리 강조해도 끊임없이 사고는 발생하는 이상, 줄일 수 있는 위험은 줄여야 하지 않나? 그래봤자 저지를 놈은 저지른다는 식으로들 말하던데, 그러면 사람은 어차피 죽기 마련이니 병원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곳인가? 아니면 죽을 사람은 죽어서 본보기라도 보여주라는 이야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난 당신 설득할 생각은 없지만 동의도 못 하겠다.


덧글

  • 정석호 2014/12/05 17:28 # 삭제 답글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실 우리나라 건축인 이나 토목인들은 클라이언트의 명령에 복종? 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집을 궁전으로. 설계해도 건축주가 벙커로 지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사실 뭐...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라도 생각합니다
    이번 판교사건의 환풍구를 보자면 약 60cm위로 솟은 환풍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해외의 사례처럼 딱봐도 위험해 보이게 만들어서 접근자체를 꺼리게 하기위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도 있지만 건축가나 토목인들은 주변의 이해관계나 민감한 클라이언트의 요구문제 등 여러가지들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알면서도 외압에 못이겨 그렇게 만든걸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냥 토목인들이 생각없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하겠죠 ㅎㅎ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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